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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곁봄 | 칼럼
가르치고 배우며 실행한다, 뭐라도!
시니어들의 베이스캠프 뭐라도학교
안태호 /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협동조합 이사

 노인의 존재는 오랫동안 인류에게 큰 축복이었다. 노인은 세대를 넘어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었다. 족장, 촌장, 주술사, 장로, 원로 등 무엇으로 불리든 노인은 한 사회의 경험과 지혜를 체현하고 있는 존재로 추앙받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요구받았다. 꼭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노하우들을 확보하고 숙성시키기 위해 오래된 경험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문자문화가 발달하고 기술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추월한 자리, 인간이 왜소해지는 지점에서 노인들의 입지는 급격하게 축소되었다.[각주:1]

 

 이제 기대연령 100세가 그리 놀랍지 않은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며 시니어라는 명명을 받은 이들은 심지어 사회에 짐스런 존재로 언급되기 일쑤다. 노인, 시니어의 존재 자체가 불안과 고독이란 개념과 쌍을 이루지만, 본격적인 방황은 퇴직과 함께 시작된다. 은퇴는 누구에게든 어려운 과정이다. 평생을 몸 담아 왔던 일터와 조직에서 분리되는 경험, 줄어드는 수입과 제한된 관계는 시니어들을 시나브로 위축시킨다. 조직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개인으로 서는 일은 확실히 불안하고 고독한 미션이다. ‘은퇴난민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시니어들의 불안을 눅이기 위해 지자체, 기관, 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수많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정들이 그저 강의로만 끝나는 까닭에 이 프로그램과 저 프로그램, 이 교실과 저 교실을 전전하며 떠도는 시니어들의 자조 섞인 명명이다. 뭐라도학교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뭐라도 학교, 항해를 시작하다

 

 뭐라도학교는 2014년 수원시평생학습관의 한 프로그램에서부터 시작됐다. ‘인생학교라는 이름의 11회차 교육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을 통해 건강, 재무, 노후 설계 등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뭐라도학교 역시 출발은 인생학교 동문들의 친목모임이었다. 평생학습관 정성원 관장이 강의실 사용과 강사비 지원을 제안하며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동문회로 끝내지 말고 단체를 만드는 게 어떠냐는 게 정 관장의 제안이었다. 누구에게나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과 활동을 위한 최소비용은 일차적인 조건이자 비빌 언덕이 된다. 뭐라도학교 김정일 교장은 사람들이 반가워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 먹고 등산하는 정도였는데, 공간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요. 게다가 강사도 지원한다고 하니까 다들 의욕을 보였어요.”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각주:2]


 비빌 언덕과 의욕이 있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성사될 리는 만무하다. 뭐라도학교의 준비 역시 네 달 가까이 치열한 과정을 거쳤다. 수원시평생학습관 실무자들과 30명 정도의 시니어가 함께 어떤 형태의 조직을 만들 것인가를 두고 TF를 조직, 12일 워크숍 포함 16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결국 201412월 창립총회를 열고, 20153월 신학기에 개교했다.

 

 

뭐라도? 뭐라도!

 

 “뭐라도 배우고, 뭐라도 나누고, 뭐라도 즐기고, 뭐라도 행하자뭐라도 학교가 내걸고 있는 이 한 문장의 구호만으로 학교의 성격이 확 드러난다. ‘뭐라도라는 말에서 누군가는 자조적인 뉘앙스를 읽어낼지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뭐라도학교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보면 자신감의 속살이 조금은 드러난다. 과정은 기본 클래스, 전문 클래스, 창작 클래스 등 모두 3개로 구성된다. 기본 클래스는 뭐라도학교의 출발점이 된 인생수업1년에 2회 진행된다. 전문클래스는 시니어의 성장을 도모하는 심화과정 단계로 사회공헌/사회적경제 아카데미’, ‘시니어 전문강사 양성과정’, ‘우리들교실 강사워크숍등이 있다. 창작클래스는 시니어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배움과 나눔의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회원 스스로 주제와 강사를 선정하여 함께 배우는 공개강좌 월담’, 회원 스스로 강좌를 개설하여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우리들 교실’, 회원 간의 교류와 활동의 장 커뮤니티등이 운영되고 있다.

 

 공개강좌 월담은 매달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과 담을 넘는다(=경계를 넘는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월담은 시니어들이 원하는 교육을 시니어 스스로 기획하자는 의도에서 준비되었다. 뭐라도학교의 구성원들은 시니어 관련 정책과, 교육을 비롯한 프로그램 일체를 모두 젊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시니어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에 대해, 필요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월담에서는 회원들이 주제를 정하고 강사섭외까지 모두 진행한다. 그 동안 죽음과 노년의 사랑을 영화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배낭여행, 반려동물, 패션, 음악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뤄왔다.


 ‘우리들교실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강의 자체가 외부강사가 아닌 회원들의 강의로 이루어진다. 회원들이 스스로 만든 강좌를 회원들이 선택하여 운영하는 방식이다. 뭐라도학교에서는 누구든 한 강좌 이상을 반드시 개설할 것을 권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강좌를 연다는 것은 스스로를 점검하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강좌 콘텐츠는 뭐든지 가능하다. 지금까지 개설된 강좌들을 보면 레몬티 만들기, 스마트폰 사진으로 동영상 만들기, 시니어 브랜드 명함 만들기, 사진과 함께 하는 세계여행, 만화로 배우는 일본어, Fun Pops, 서양화 기초, 타로 이야기, 나의 블로그 만들기, 인물 스케치, 유전자조작(GMO) 알아보기, 기분 좋은 정리수납 등 분야와 내용을 넘나드는 수많은 내용들이 축적되고 있다.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가르치는 것은 스스로 배우는 과정이며, 배우는 사람 역시 자신을 배움으로 이끌면서 스스로를 가르친다. 결국 가르치고 배우는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 서로의 관점에서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만나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렛츠 컨퍼런스[각주:3]로 알려진 지식 품앗이 시스템이 이런 과정들을 잘 보여준다. 수원시평생학습관의 누구나학교, 은평구평생학습관의 숨은 고수찾기, 똑똑도서관, ㅇㅇ은 대학, 대구의 내마음은 콩밭 협동조합 등이 배움과 가르침의 이중주를 일상화한 활동들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뭐라도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시니어, 짐이 아니라 힘

 

 학습으로 모인 시니어들은 사업단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시니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 노인들이 컴퓨터를 이해할 때까지 11로 가르치는 '시니어 일대일 컴퓨터 교실', 노인들의 빛바랜 사진을 모아 영상 자서전을 만들어주는 '추억디자인연구소', 웰다잉 문화를 교육하는 '좋은 3()4() 연구소', 음악적 재능을 기부하는 '어울림한마당', 그리고 시니어들의 팟캐스트 방송인 '뭐라도야그팟' 등이 사회적경제사업단의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일부 사업단은 활동을 통해 올린 수입을 회원들에게 배당하기도 한다. 사실, 액수로는 큰 금액이 아니지만 함께 하는 일을 통해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시니어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시니어 일대일 컴퓨터 교실'은 전국화를 모색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사업이다. 사실,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기술은 노인들에게 더욱 유용한 경우가 많다. 인터넷 뱅킹만 해도 그렇다. 은행에 가려면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는 데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인터넷뱅킹을 활용하면 단 몇 분 만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국제전화 비용 때문에 일본에 사는 딸과 소식을 주고받지 못하다 컴퓨터 교실 수강 후에 이메일과 화상통화로 소식을 주고받게 된 77세 할머니의 사연은 이 수업의 가치를 뚜렷하게 증명한 사건이었다. 올해는 93세 할아버지가 수업 전체를 소화하고 수료해 많은 회원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뭐라도학교에는 이밖에도 맘에 맞는 사람들이 훌쩍 여행을 다니는 어디든 여행단’, 책읽기 모임 책보’, 포크댄스 동호회 등 시니어들의 문화 활동을 위한 동호회들도 여럿 활동 중이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배움부터 이렇게 배우고 나누고 즐기고 행하는 과정들은 유기적으로 엮여 스스로 배우고 도전하는 액티브시니어들의 베이스캠프라는 학교 소개말을 뒷받침한다.

 

 뭐라도학교의 비영리단체 등록에서 발생한 웃지 못 할 일화는 학교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단체 등록을 위해 관공서에 간 김정일 교장은 교육정책과, 시니어과, 일자리정책과를 뺑뺑이돌다 공무원과 다툴 뻔했다고 한다. 시니어들의 모임이면서 학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일자리에 대한 고민도 놓지 않고 있는 복합적인 학교의 성격이 담당 공무원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걸까. 성격은 복잡해도 학교는 순항중이다. 학교 출범 3년 만에 25명의 회원은 180명으로 늘어났다. 2016년에는 대한민국 평생교육대상을 받았고, 2017년에는 수원시가 유네스코 학습도시상을 받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뭐라도학교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시니어들의 자발성, 자기기획이 갖는 역동성은 노인이 사회의 짐이 아니라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 “구전 전통과 관습에 의존하는 문명들이 노인들에게 더 호의적이었다. 그러한 사회에서 노인들은 세대 간의 연결 고리이자 집단의 기억의 전수자 역할을 했다. 노인들은 기나긴 야회와 법적 소송에 필요한 존재였다. 그리스, 그리고 특히 중세가 그러한 경우였다. 반대로 관습에 대한 그들의 지식을 무용한 것으로 만드는 문자와 문서 기록, 성문법의 발달은 노인들에게 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와 르네상스는 그들에겐 흉조였다. 법률을 존중하는 이 문명들은 노인의 관습적 경험을 덜 필요로 했다. 더구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역사가 상대적으로 가속화되어 노인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용한 것들의 대열로 낙오하는 데 한몫했다.” 조르주 미누아, <노년의 역사> 540쪽, 아모르문디(2010) [본문으로]
  2. 고영직/안태호, <노년예술수업> 5장, 서해문집(2017) [본문으로]
  3. 서울시 NPO 지원센터 아카이브에서 발췌 http://www.seoulnpocenter.kr/bbs/board.php?bo_table=npo_aca&wr_id=22 “렛츠(LETS)는 공동체 안에 이미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동시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고, 공유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배움과 지식의 품앗이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렛츠(LETS)는 Local Energy Trading System의 앞글자를 합친 말인데 지역화페운동인 LETS(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창작자들을 위한 렛츠 컨퍼런스가 2010년 3월, 국내에서 처음 개최되었습니다.” (렛츠 컨퍼런스는 ‘지속가능한 창작공동체’(지창공)라는 단체를 통해 소개되었지만, 현재 지창공 사이트(https://sites.google.com/site/balsangcc/)의 자료 링크들이 작동하지 않아 관련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의 주소를 연결했다.) [본문으로]
지지봄봄